싯다르타가 도시에서 살던 아들을 바수데바(싯다르타의 친구)와 자신이 살고 있는 시골 으로 데리고 온 후의 이야기
싯다르타는 아들이 자시를 이해하게 되기를,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여주기를, 그 사랑에 응답해주기를 오랫동안, 여러 달이 지나도록 기다렸다. 바수데바도 여러 달이 지나도록 지켜보면서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 싯다르타가 또다시 고집과 변덕을 부리면서 아버지를 심하게 괴롭혔고 아버지의 밥그릇 두 개를 꺠뜨려버리기까지 하자 그날 저녁 바수데바는 친구를 불러내 말을 꺼냈다.
“이해해주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당신을 생각하는 친구로서 하는 말입니다. 당신이 괴로워하며 근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아요. 당신의 아들은, 사랑하는 친구여, 당신에게뿐만 아니라 내게도 걱정을 끼치고 있습니다. 저 어린 새는 이곳과는 다른 생활, 다른 보금자리에 익숙해요. 저 아이는 당신처럼 구역질나고 질린 나머지 부와 도시로부터 도망쳐온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그 모든 것에서 떠나오게 됐지요. 나는 강물에게 물어보았습니다.오, 친구여, 여러 번에 걸쳐 물어보았고말고요. 그런데 강물은 웃을 뿐입니다. 나를 보며 웃고, 당신을 보며 웃고, 우리의 어리석음에 대해 고개를 가로젓고 있어요. 물은 물과 어울리고, 청춘은 청춘끼리 어울리는 법인데, 당신의 아들은 지금 마음껏 자라날 수 있는 곳에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강물에게 물어보고, 강물이 하는 말에 직접 귀를 기울여보세요!”
싯다르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수많은 주름살 속에 한결같은 평온을 간직한 친구의 다정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 아이와 헤어질 수 있을까요?” 싯다르타는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이며 나직이 말했다. “내게 시간을 좀더 주세요, 친애하는 벗이여! 알다시피 나는 저 아이를 얻고자 싸우고 있답니다. 저 아이의 마음을 얻으려 애쓰고 있어요. 사랑과 다정이 깃든 인내심으로 사로잡으려 하고 있지요. 언젠가 때가 되면 강물이 저 아이에게도 말을 건넬 것입니다. 저 아이도 부름을 받고 있으니까요.”
바수데바의 미소는 더욱 따뜻하게 피어올랐다. ‘아, 그렇고말고요. 저 아이도 부름을 받고 있지요. 저 아이 또한 분명 영원한 생명에서 왔으니까요. 그렇지만 우리가, 다시 말해 당신이 내가 과연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 아이가 무엇을 위해 부름을 받고 왔는지, 어떤 길을 가고 또 어떤 행위를 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으며 어떤 고통을 겪도록 부름을 받고 있는지 말입니다. 자부심이 강하고 마음이 드센 아이이니, 앞으로 저 아이가 겪을 고통은 적지 않을 거입니다. 그런 살마은 많은 고통을 겪고, 많은 방황의 길을 걸으며, 많은 과오를 범하고, 많은 죄업을 짊어지게 됩니다. 말해보세요. 친애하는 벗이여, 당신은 저 아이를 교육하고 있지 않나요? 저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나요? 저 아이를 때리지 않나요? 저 아이를 벌주지 않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수데바. 결코 그렇지 않아요.”
“그래요, 당신은 아이에게 강요하지도, 아이를 때리지도, 아이에게 명령하지도 않습니다. 부드러움이 딱딱함보다 강하고, 물이 바위보다 강하며, 사랑이 폭력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아주 훌륭합니다. 하지만 저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고 벌을 주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것은 혹시 당신의 착각이 아닐까요? 당신은 혹시 사랑의 끈으로 아이를 속박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 아이를 매일같이 부끄럽게 만들고, 또 호의와 인내심으로 저 아이를 더 견디기 힘들게 만들지는 않나요? 오만불손한 응석받이인 저 아이더러 바나나나 먹고 지내며 쌀밥은 특별한 음식이라고 여기는 두 노인과 함꼐 오두막에 살라고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 저 아이의 생각은 우리 같은 노인의 생각과는 다르고, 저 아이의 심장도이미 늙고 고요해진 우리 노인의 심장과는 박동이 다르지 않을까요? 저 아이는 사실 이 모든 일을 강요받으면서 벌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싯다르타는 당황하여 시산을 땅으로 떨구었다. 그러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생각에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습니까?”
바수데바가 말했다. “저 아이를 시내로, 어머니와 살던 집으로 데려다주세요. 그곳에는 아직 하인들이 있을 테니 그들에게 아이를 맡기고, 하인이 남아있지않다면 스승을 구해 아이를 맡기세요. 가르침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소년들, 소녀들과 어울리게 하고 그가 속한 세계에 있게 하기 위해서요. 그런 생각은 안 해봤습니까?”
“당신은 내 마음을 꿰뜷어보고 있군요.” 싯다르타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여러 번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ㅇ낳아도 마음씨가 곱지 않은 아이를 어떻게 세상에 내보낼 수 있겠습니까? 저 아이가 호사를 즐기고, 쾌락과 권력에 빠지고, 아비의 모든 과오를 되풀이하면서 윤회의 소용돌이 속에 완전히 휘말려버리지 않을까요?”
뱃사공은 환한 미소를 짓소 시다르타의 팔을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것도 강물에게 물어보세요, 친구여! 강물이 그 말을 듣고 웃는 소리를 들어봐요! 당신은 과거에 스스로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이, 아들을 어리석은 행동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정말로 믿는 건가요? 아들을 윤회의 소용돌이로부터 어떻게든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도대체 어떻게요? 가르침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훈계를 통해서? 친애하는 벗이여, 당신은 언젠가 이 자리에서 내게 브라만의 아들 싯다르타에 관해 매우 교훈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 이야기를 벌써 다 잊었나요? 사문이었던 싯다르타를 윤회로부터, 죄로부터, 탐욕으로부터, 어리석음으로부터 누가 지켜주었던가요? 아버지의 신앙심, 스승들의 훈계, 그 자신의 지식과 구도 행위가 지켜주었던가요?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고, 스스로 그러한 삶을 살면서 자신을 더럽히고 죄과를 짊어지고, 또 고배를 마시면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려고 하는데, 어떤 아버지, 어떤 스승이 그를 막을 수 있었지요? 사랑하는 친구여, 혹시 누군가는 그 길을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이 어린 아들을 사랑하고, 그 아이만은 그런 번놔와 고통, 환명을 겪지 ㅇ낳기를 바란다고 해서 그게 가능할까요? 아들을 위해 열 번 죽는다 해도 당신은 그 아이의 운명을 털끝만큼도 덜어줄 수 없을 겁니다.”
여태껏 바수데바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싯다르타는친구에게 다정하게 감사의 뜻을 표한 뒤 무거운 마음으로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수데바가 한 말은 모두 실은 스스로도 생각해본 것 있고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가 생동으로 옴길 수 없는 앎이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자식을 아끼는 마음과 자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 앎보다 더 강했던 것이다. 살아오면서 무엇에 이토록 마음르 빼앗긴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맹목적으로, 이렇게나 고통스럽게, 이렇게나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로, 그럼에도 이렇게나 행복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한적이 있었던가?
싯다르타는친구의 충고를 따를 수가, 아들을 떠나보낼 수가없었다. 그는 아들이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고 자신을 멸시해도 그냥 내버려두었다. 아무말 없이 그저 기다릴 뿐, 매일같이 친절이라는 무언의 전투, 인내라는 무언의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바수데바 역시 말없이 친절하게, 모든 것을 알면서도 참을성 있게 기대려주었다. 인내하는 일에서는 두 사람 모두 대가였다.
-헤르만헤세의 <싯다르타>, 문학동네